신축 아파트는 계약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계약서를 쓰고 나니 오히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이 살아갈 공간을 직접 설계해야 하는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나 역시 예전에는 그랬다.
계약서에 서명하고 열쇠를 받으면 새로운 집에서 살 준비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탈리아 신축 아파트는 달랐다.
오히려 계약을 하고 나서부터 진짜 고민이 시작되었다.

처음 집을 봤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본 것은 2024년 1월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하다.
그때는 건물이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넓은 공터와 건축 도면 몇 장. 그게 전부였다. 넓은 공터와 도면 몇 장만 보면서 '여기가 정말 우리 집이 될까?'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집을 보러 갔다기보다 미래를 보러 갔다고 해야 할 정도였다.
당시에는 그 도면만 보고 집을 산다는 것이 쉽게 상상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1년 2개월 동안 수많은 집을 보러 다니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건물 외벽이 올라와 있었다.
공터만 보던 때와 달리 실제 건물의 크기와 방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자, 도면으로만 상상했던 공간이 조금씩 현실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3층까지 골조가 완성되어 있었고 밖에서 보면 건물 형태는 이미 갖춰진 상태였다.
하지만 내부는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이제는 도면 위에서 살아야 했다
계약을 하고 나니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바로 공간 설계였다.
우리가 계약한 집은 길고 긴 직사각형 구조였다.
처음에는 단순해 보였지만 막상 공간을 나누려니 생각보다 어려웠다.
우리가 원하는 공간은 명확했다.
안방. 아이 방. 내가 일할 수 있는 스튜디오 겸 손님방. 그리고 거실과 주방이 연결된 오픈 스페이스.
문제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이 모든 것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내부 벽은 조정할 수 있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었다.
내부 벽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즉, 방 크기를 어느 정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었다.
방을 조금 줄이면 거실을 넓힐 수 있고, 복도를 줄이면 다른 공간을 확보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건축 측량사와 여러 차례 미팅을 진행했다. 직접 건축사들이 쓰는 Auto Cad까지 깔았다. 한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따.하지만 원하는 공간을 정확하게 설명하려면 직접 도면을 수정해 보는 것이 가장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인터넷을 찾아가며 선 하나를 그리고, 다시 지우고, 벽을 몇 센티미터씩 옮기는 작업을 반복했다.

여기가 안방. 여기는 아이 방. 여기는 스튜디오.
그렇게 몇 번의 수정 끝에 첫 번째 내부 벽 공사 도면이 완성되었다. 그때만 해도 정말 만족스러웠다.
여러 번 수정한 도면을 본 측량사가 "혹시 관련 일을 하시나요?"라고 물을 정도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괜히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그때까지만해도 "공간 잘 나왔다." "생각보다 훨씬 괜찮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엔지니어의 한마디
예상하지 못했던 내진 설계의 벽
최종 검토를 위해 엔지니어에게 도면을 보냈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가 계획한 위치에는 화장실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공간도 충분했고 배치도 괜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명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
문제는 내진 설계였다.

집 한가운데 숨어 있던 제약
우리 집 구조는 아주 긴 직사각형이다.신축 아파트는 자유롭게 구조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건물의 구조 안전과 관련된 부분은 변경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건물의 안전을 위해 집 중앙 부분에는 특별한 내진 구조가 들어가야 했다.
쉽게 말하면 두 개의 긴 직사각형을 연결해 주는 안전장치 같은 역할이었다.
평소에는 전혀 보이지 않지만 지진이 발생했을 때 건물을 지탱하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문제는 그 위치가 바로 우리가 화장실을 넣고 싶었던 자리와 겹친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 부분에 화장실을 설치하면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구조물이 움직이며 배관이 파손될 수 있고, 그 경우 물이 새면서 여러 세대에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었다.
듣고 보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안전을 생각하면 무시할 수 없는 문제였다.
조금 아쉽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아쉬웠다.그때 처음 알았다. 집을 설계한다는 것은 원하는 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안전과 현실 속에서 가장 좋은 선택을 찾는 과정이라는 것을.
만약 그 내진 구조가 없었다면 훨씬 넓은 오픈 스페이스가 가능했을 것이다.
거실도 더 넓어지고 주방도 지금보다 시원하게 나왔을 것이다.
도면을 볼 때마다 "딱 저 부분만 없었으면 정말 완벽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도면 속 선 하나가 삶을 바꾼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새삼 느낀 것이 있다. 집은 단순히 벽과 창문으로 이루어진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전엔 완성된 집만 보였다면 이제는 벽 하나가 왜 그자리에 있는지, 문이 왜 그방향으로 열리는지, 공간 하나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이 필요한지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도면 위의 선 하나. 벽의 위치 몇 센티미터. 화장실의 방향. 문이 열리는 위치.
그 작은 차이들이 앞으로 몇십 년 동안의 생활을 결정한다. 예전에는 집을 볼 때 인테리어만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들의 고민이 조금은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결정해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다.
이 집은 단순히 완성된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생활 방식을 하나씩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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