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redo3를 선택하고 첫 번째 주방 설계까지 받아본 뒤에는 큰 틀이 어느 정도 정해졌다고 생각했다.
이제 남은 일은 수납장 위치를 조금 조정하고, 색상과 상판, 주방가전을 고르는 정도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신축 아파트에서는 도면에 그려진 공간이 그대로 완성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우리 집 주방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설계했던 주방은 결국 완전히 다른 자리로 이동했고, 그때까지 고민했던 배치는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처음 주방은 지금의 거실 자리에 있었다
아파트를 처음 계약했을 때 주방은 현재 거실로 사용하고 있는 공간에 계획되어 있었다.
현관에서 집 안으로 들어오면 주방이 거의 정면으로 보이는 구조였다.
한쪽에는 큰 창문이 있었고, 창문을 통해 빛이 충분히 들어오는 밝은 공간이었다.
처음에는 밝고 개방적인 주방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가구를 배치해 보니 도면만 봤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문제가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사용할 수 있는 벽의 길이가 생각보다 짧다는 것이었다.
큰 창문은 예뻤지만 수납에는 불리했다
처음 주방이 예정되어 있던 벽에는 크기가 큰 창문이 있었다.
창문이 있다는 것은 채광 면에서는 분명 장점이었다.
하지만 주방 수납장을 설계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창문을 열기 위해서는 창짝이 움직이는 범위만큼 공간을 비워야 했고, 창문 바로 옆까지 키큰장이나 깊은 수납장을 연결할 수 없었다.
벽 전체를 수납장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창문 앞 약 90cm 정도의 공간이 애매하게 남았다.
그 공간에 억지로 장을 넣으면 창문을 여닫기가 불편해지고, 비워 두면 수납 손실이 너무 컸다.
팬트리처럼 키큰장을 길게 연결하고 싶었지만 창문 때문에 중간에서 멈춰야 했다.
큰 창문은 공간을 밝게 만들었지만, 내가 원했던 수납 중심의 주방과는 잘 맞지 않았다.
처음에는 ㄷ자형 주방을 생각했다
집 입구에서 주방이 바로 보이는 구조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주방을 ㄷ자형으로 계획했다.
입구 쪽에서 보이는 면을 가구로 어느 정도 막아 주면, 현관에서 싱크대와 조리대가 곧바로 드러나는 것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짧은 벽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한쪽 벽만 사용하는 일자형보다 ㄷ자형이 수납 면에서도 유리해 보였다.
하지만 ㄷ자형 구조를 적용하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주방 안쪽 통로가 좁아졌고, 냉장고와 수납장 문을 열었을 때 사람이 움직일 공간도 빠듯해졌다.
도면 위에서는 충분해 보였던 통로가 실제 가구 깊이를 적용하자 생각보다 훨씬 답답했다.
특히 여러 사람이 동시에 주방을 사용하거나 식기세척기 문을 열어 둔 상태에서는 이동이 불편할 가능성이 컸다.
유럽식 냉장고 크기로는 부족했다
주방 설계에서 계속 발목을 잡았던 또 하나의 문제는 냉장고였다.
이탈리아 가정에서는 한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냉장고보다 작은 크기의 제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방 쇼룸에서도 빌트인 냉장고나 폭이 비교적 좁은 냉장고를 기준으로 설계하는 일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나는 장을 자주 보고 한 번에 많은 식재료를 보관하는 편이었다.
김치와 반찬, 채소, 고기, 냉동식품까지 생각하면 작은 냉장고 하나로는 부족할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삼성의 양문형 냉장고를 넣고 싶었다.
문제는 큰 냉장고 하나를 배치하는 순간 수납장 한 구간이 거의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냉장고 옆으로 키큰장을 넣으면 주방이 너무 무거워 보였고, 키큰장을 빼면 식재료와 소형가전을 보관할 곳이 부족해졌다.
냉장고를 유지하면 수납이 줄고, 수납을 늘리면 냉장고 크기를 포기해야 했다.
한국식 식재료 보관 습관과 유럽식 주방 설계 사이의 간격을 그때 처음 실감했다.
화장실을 옮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창문과 냉장고 문제를 두고 계속 배치를 바꾸던 중, 집 전체 구조에 영향을 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건축 엔지니어가 기존 도면에 표시된 위치에는 화장실을 그대로 만들기 어렵다고 설명한 것이다.
배관과 건축 구조를 고려해 화장실 위치를 변경해야 했다.
화장실 하나만 이동하는 문제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화장실이 옮겨지면서 거실과 주방에 사용할 수 있는 면적과 동선이 함께 달라졌다.
결국 기존에 주방으로 계획했던 공간을 거실로 사용하고, 다른 쪽 공간을 새로운 주방으로 정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그동안 고민해 온 설계가 모두 무너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새 위치를 도면에 다시 그려 보자 오히려 이전보다 가능성이 많아졌다.
큰 창문 때문에 끊겼던 수납장을 길게 연결할 수 있었고, 냉장고와 키큰장을 한쪽에 모아 배치할 여지도 생겼다.
주방과 거실의 관계도 이전보다 자연스럽게 정리할 수 있었다.
주방 위치가 바뀌자 모든 것을 다시 결정해야 했다
주방 위치가 바뀌면서 이전 설계에서 사용했던 가구 배치는 거의 남지 않았다.
싱크대 위치부터 인덕션, 식기세척기, 냉장고, 오븐, 키큰장까지 모두 다시 정해야 했다.
새 주방은 이전보다 벽을 길게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거실과 연결되는 방식과 아일랜드 크기를 함께 고민해야 했다.
수납을 많이 넣으면 거실에서 주방이 무겁게 보였고, 가볍게 만들면 실용성이 부족했다.
아일랜드를 크게 만들면 조리대는 넓어졌지만 통로가 좁아졌고, 작게 만들면 원하는 만큼의 작업 공간이 나오지 않았다.
냉장고 위치를 바꾸면 식재료를 꺼내는 동선이 달라졌고, 인덕션을 옮기면 후드와 전기 배선까지 다시 고려해야 했다.
하나를 바꾸면 다른 하나가 함께 움직였다.
주방 설계는 가구 몇 개를 예쁘게 배치하는 일이 아니라 여러 조건이 연결된 퍼즐에 가까웠다.
디자인은 일곱 번, 가전은 세 번 바뀌었다
첫 번째 상담부터 최종 생산에 들어가기 전까지 주방 배치는 모두 일곱 번 수정됐다.
그렇다고 매번 완전히 새로운 주방 모델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Arredo3의 Kalì 모델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꾸지 않았다.
문짝 색상과 손잡이, 상판도 한 번 결정한 뒤에는 그대로 유지했다.
내가 계속 수정한 것은 주로 구조와 동선이었다.
- 주방 위치 변경
- ㄷ자형 구조와 일자형 구조 비교
- 키큰장과 팬트리 수납 위치
- 냉장고 크기와 배치
- 아일랜드 크기와 통로 폭
- 싱크대와 인덕션의 위치
- 거실에서 주방이 보이는 방향
주방가전 브랜드는 세 번 바뀌었다.
처음에는 Electrolux를 고려했고, 큰 냉장고를 사용하기 위해 Samsung으로 방향을 바꿨다가 최종적으로는 Bosch를 선택했다.
가전이 바뀔 때마다 제품 크기와 설치 조건도 달라졌기 때문에 주방 가구 구성 역시 함께 수정해야 했다.
냉장고 한 대를 바꾸는 일이 단순히 제품만 교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과정에서 알게 됐다.
일곱 번 수정한 것이 과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주방을 일곱 번이나 수정한 것이 너무 많아 보일 수도 있다.
담당자에게 변경 요청을 할 때마다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한 번 설치한 주방은 쉽게 바꿀 수 없었다.
몇 년 동안 매일 사용하는 공간인데, 계약을 빨리 끝내기 위해 불편한 점을 그대로 남겨 두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예쁜 주방을 원했다.
하지만 설계를 반복하면서 점점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생활하기 편한 주방이었다.
냉장고에서 식재료를 꺼내고, 싱크대에서 씻고, 조리대로 옮겨 요리하는 과정이 자연스러운지 살펴봤다.
식기세척기 문을 열었을 때 통로가 막히지 않는지, 자주 사용하는 그릇을 가까운 곳에 넣을 수 있는지도 확인했다.
거실에서 보았을 때는 깔끔하지만, 안쪽에는 충분한 수납이 있는 주방을 만들고 싶었다.
일곱 번의 수정은 마음이 자주 바뀌어서가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주방을 조금씩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첫 도면부터 설치까지 거의 1년
처음 주방 쇼룸을 방문해 설계를 시작한 시점부터 최종 주문, 제작, 배송까지는 거의 1년이 걸렸다.
그 사이 주방 위치도 바뀌었고, 냉장고와 가전 브랜드도 달라졌다.
도면 위에 있던 벽은 실제로 세워졌고, 예상과 달랐던 부분은 현장에서 다시 확인해야 했다.
처음부터 완벽한 설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신 집의 구조가 조금씩 구체화될 때마다 주방도 함께 수정해 갔다.
돌이켜 보면 처음 설계한 주방과 최종 완성된 주방은 거의 다른 집의 주방처럼 보인다.
하지만 처음부터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밝고 모던하면서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주방, 그리고 보기 좋은 것만큼 실제 생활에서도 편한 주방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다음 글에서는 세 번이나 바뀐 주방가전과, 결국 Bosch를 선택하게 된 과정을 따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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